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레알크래프트 - 지구 반바퀴를 돌아온 유라시아횡단차, 쌍용 무쏘. 파수비오가죽으로 만든 천연가죽핸들

Domestic Brand/Ssangyong

by Master Ki 2019. 8. 13. 18:31

본문

언젠가 온라인에서 우연하게 알게 된 유라시아 대륙횡단 여행자였다. 심지어 그는 신혼여행으로 유라시아 대륙횡단 여행을 3-4개월차에 걸쳐 즐기던 중이었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기백이다. 특히 그 장시간의 신혼여행을 흔쾌히 동조한 신부는 더욱 그릇이 큰 사람이겠지. 

내가 어릴 때 국산자동차 브랜드에선 기아자동차와 쌍용자동차가 다카르랠리를 주파하며 자사 차량의 성능을 입증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유라시아 대륙횡단을 하는 방송도 연달아 기획이 되었던 것이 기억이난다. 그래서였을까. 동년배의 남자들은 종종 유라시아 대륙횡단이나 북미대륙횡단이나 중남미대륙종단의 여행을 꿈꾸는 낭만주의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꿈은 꿈으로만 가지고 있을 뿐, 실제 세상에서는 밥을  벌기 바빠 여행이라곤 인근국가나 국내로 짧게 다녀오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 젊은 남자는 신혼여행으로 유라시아 대륙횡단을 실행하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블로그를 찾아들어가 이웃신청을 했고 잊을 만하면 서로 댓글을 남기며 언젠가 보자고 했었다. 그 기억마저도 잊어갈 때즈음, 우연찮은 기회에 분당에서 모임을 가지게 되었고 그 자리에 그 젊은 남자가 나를 만나고자 야근을 뒤로하고 달려왔단다.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 ROK. 한국에서 등록된 차량을 해외에 가지고 나갈 때 붙는 국가표식이 있는 쌍용 무쏘. 이 차를 실제로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짧고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는 종종 작당을 모의했다. 그 젊은 남자는 자동차를 사랑하는 오프로더였고 본인의 차량을 본인의 지식과 힘으로 꾸며보고자 노력을 했지만 가끔 좌절도 맛봤다며 쓴 웃음을 짓는다. 온라인에서 그럴싸하게 소개하는 일반적인 업체의 기술력에 대한 신뢰가 어렵다며 본인이 직접 업체를 발로 뛰며 찾았고 그 결과 구형 코란도 차량을 새로 영입해 리스토어를 진행하며 믿고 맡길만한 걸출한 은둔고수를 발굴하기도 했다며 신나한다. 섀시와 파워트레인 복원은 어느 정도 방법과 업체를 찾은 것 같지만 문제는 실내 복원이라며 도무지 알수도 없고 알면 알수록 사기꾼 같은 업체만 있었다며 고충을 토로하는 이 남자. 대체 어떤 사연이 얼마나 쌓인걸까..... 

주행에 필요한 섀시파트와 파워트레인파트는 전문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일반적인 사안이 된지 오래다. 실력이 검증된 업체를 찾기가 어렵지가 않다는 얘기이다. 반면, 인테리어파트의 복원은 아직까지 비전문적인 사람이나 업체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사용해서는 안될 미검증 자재와 소재, 공법 등으로 말도 안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일이 일상다반사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 젊은 남자는 나를 알게 된 것이 한줄기 빛과 같다는 극찬의 표현을 사용하며 사부라고 부르기로 했다며... 지식을 전파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내가 과연 이 스펀지 같은 말많은 친구를 잘 인도할 수 있을 것인가.... 장고 끝에 소정의 교육비를 받고 교육을 진행해보기로 했다. 첫 교육, 첫 제자. 타이틀이 참 부담스럽다.

썽용 무쏘의 순정가죽핸들. 오래된 만큼 손상이 심하다.

세월의 모진 풍파를 겪은 쌍용 무쏘의 가죽핸들을 첫 교육교보재로 사용하기로 하고 가져왔다. 미리 2회차의 이론교육을 실시한 상태에서 첫 실습 겸 참관교육으로 진행되었다. 쌍용은 매스프러덕션 완성차 업체이지만 실제로 생산하고 판매되는 집계를 보면 매스프러덕션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소량의 생산을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평소 쌍용차의 완성도는 낮지만 소재의 퀄리티는 회사의 규모에 비해 정말 말도 안되는 고급소재가 적용된 부분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소재업체와의 단가조정이 난관이었을 것 같다. 그래도 소비자의 입장에선 고급소재가 다수 적용된 매니악한 차량을 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가죽표면을 벗겨낸 상태의 우레탄핸들. 일반적인 차량의 기본 우레탄 핸들과는 뭔가 다르다.

게다가 쌍용은 가죽핸들 내부의 우레탄 기본핸들 마저 시대를 앞서간 스티치 인 몰드 [stitch in mold / 금형에 데코레이션 스티치를 가공하여 제품표면에 음각 또는 양각으로 도드라지게 만드는 기법] 기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불과 4-5년전에 사용한 기법인데 쌍용자동차는 이미 오래 전에 단종된 무쏘에서부터 스티치 인 몰드 기법을 적용한 부품을 만들었다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기본 사양은 기본 우레탄 마감으로 출고되었지만 고급사양인 천연가죽 사양에서는 이 우레탄 기본핸들 위에 천연가죽을 추가로 랩핑한 제품을 장착해 출고한 것이다. 또한 쌍용은 이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진 체어맨에서 스코틀랜드의 B.O.W.사의 천연가죽으로 시트와 내장부품을 꾸며 B.O.W.에디션 사양을 출시한 사례가 있다. 이때 현대와 제네시스 브랜드에서도 B.O.W.에디션을 만들고 싶었지만 천연가죽의 단가가 너무 고가라 양산에서는 적용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고 제네시스 차량이 체어맨보다 저렴했었나? 기억을 되짚어보면 그것은 결코아니다. 

 

역시 쌍용은 무서운 저력과 뚝심이 있는 완성차브랜드였다. 이 젊은 남자의 쌍용 무쏘 천연가죽핸들 리스토어 역시 스코틀랜드 B.O.W.의 세미아닐린 천연가죽 블랙컬러로 만들기로 합의되었다. 본인차량에 인스톨하고 싶다며 꼭 재고를 남겨두길 그렇게 바랬지만 아쉽게도 한뼘 정도의 길이가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이탈리아 파수비오 천연가죽으로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때 이 젊은 남자의 비통한 표정은 정말이지 나를 잃은 듯한 깊은 통곡이었다. 그러나 B.O.W. 한국 지사가 소멸된 이 상황에 본사에 주문을 바로 넣을 수도 없는 법. 설득에 설득을 이어 파수비오 천연가죽을 랩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파수비오 천연가죽도 정말 좋은 천연가죽이기 때문에 랜드로버/재규어/포르쉐/볼보 등의 유수 완성차 브랜드에서 애용을 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길 바란다. 

이탈리아 파수비오 천연가죽으로 다시 마감된 무쏘천연가죽핸들. 매트한 블랙에 질감은 탄탄한 느낌이다.

이번 작업에서 사용된 가죽은 이탈리아 파수비오의 오토모티브용 천연가죽이며 스티어링휠과 DAB커버 랩핑용으로 개발된 사양이다. 적용차종은 독일의 포르쉐, 그리고 한국의 제네시스이다. B.O.W. 세미아닐린 가죽 대비 단단하며 탄탄한 그립이 일품인 이 가죽은 제네시스에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본래 포르쉐를 위해 개발된 가죽이므로 제품을 만든 후 표면을 보면 포르쉐의 느낌이 난다. 자동차 회사별로 자체 스펙 [SPEC] 기준이 마련되어 있고 CCC [color combination chart]를 따르는 제품을 만들게 되어 있는 시스템이라 디자인이 보여주는 형상을 제한 시각/촉각의 퀄리티는 포르쉐의 감성이다. 

매트한 블랙의 파수비오 가죽에 브라운컬러의 세라필 스티치가 오묘하게 어울린다.
다시 대륙횡단을 위해 출격할 준비를 하는 무쏘의 천연가죽핸들. 든든한 그립이다.

젊은 차주는 그토록 원하던 B.O.W. 천연가죽이 아닌 파수비오 천연가죽으로 무쏘핸들이 만들어 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이 핸들은 교보재 역할도 겸하는 상황이라 가죽의 랩핑과정과 재단, 쏘잉, 텐션마감 방법 등의 교육과정에 충실하다 보니 사진과 영상촬영, 그리고 틈틈이 메모에 열중이었다. 기본 작업을 거의 마치고 마지막 과정인 크로스스티치를 엮는 과정과 텐젼조절 구간을 한번 실습해보길 제안했다. 보는 것과 직접 해보는 것은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담배 한대를 태우고 왔을까.. 잠시의 휴식 후 작업장에 돌아와 보니 너무 어렵다며 손사레를 치는 이 젊은 남자. 아직은 어렵고 부담스러웠을터다. 쉬워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 세상 모든 일은 전문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반드시 있다는 점은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부분이다.

다시 핸들을 넘겨받고 마감을 서두른다. 이론교육과 실습교육으로 시간이 늦어진 상황이다. 마감 후 차량에 조립을 하고 집으로 복귀한 뒤 그에게서 문자가 온다. 그립이 최고라면서 정말 좋다고 자꾸 운전을 더 하고 싶어진단다. 그리고 집에 있는 벤츠 SL과 와이프의 휘가로에도 더 랩핑을 하고싶다고 한다. 어서 실력을 키워 본인이 직접 리스토어하는 의미를 부여해 보길 바라며.....